파도의 끈
꽃을 꺾어 그 위에 놓았으니 그 때까진 맨정신이었을 것이다. 고깃배를 타고 섬을 떠났다. 백사장 위 채찍이 그은 듯한 줄로 남아있던 흔적은 파도 몇 번에 흐리게 지워졌다. 허리케인이 지나갔어요, 아가씨. 대체 이런 외딴 섬에서 어떻게 무사한 거요? 나는 대답했다. 파도는 이 뒤에서 시작했어요. 태연하게도 말 하시는군! 뱃사람 특유의 탄 피부에 잔 상처가 촘촘히 덮여 있었다. 내 일이 아니니까요. 그녀의 손끝도 이랬을까. 기억은 파도가 한 번 칠 때마다 모래알 쓸려나가듯 녹아버려서, 나는 어느 순간 아무 것도 모르는 백지가 되었다. 물 위에서 겪었기에 수용성이었던가? 미동하지 않는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는 꼭 몰라도 괜찮은, 그러니까 아무 것도 알 필요가 없는 태고의 기분에 휩싸였다. 기억의 상실은 ..
로그 2021.07.11